이재명: 공장 소년에서 여당 대통령 후보까지

이재명

이재명 대선 후보의 가난과 인권 경험은 지난 수년간 정책을 구체화했지만 동시에 파격적인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수락연설을 앞두고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21일 내년 3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된 이재명(57) 경기도지사를 가장 잘 표현한 키워드는 ‘비주류’이다. 

극심한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공장에서 일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판사나 검사보다는 인권변호사를 택했다.

따라서 그는 또한 지방 시장으로서 정치적 근육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국내 정치의 심장부인 서울 여의도에 기반을 둔 정치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7월 1일 출마선언에서 소외계층의 삶을 배려하는 의지가 강한 정치를 통해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 다짐은 그가 이끌어온 길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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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것이 없는 무명의 젊은 공장 노동자는1978년 야구 글러브 공장 청년 노동자 시절 이재

그해 4월 말 고입 동급제 입시 학원에 입학해 8월 합격했다. 

(이재명 후보 선거운동 제공)이씨의 어린 시절은 가난의 하나였다. 

1964년 경북 안동에서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5남 2녀 중 한 명이었다. 

초등학교를 마친 후, 그는 경기도 성남의 서울 남부 교외로 이사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는 중학교에 다니기 보다는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산업재해로 왼쪽 손목 관절이 프레스 기계에 의해 뒤틀린 뒤 6급 장해로 분류됐다. 

그는 구부러진 팔 때문에 아직도 팔을 옆으로 곧게 뻗고 서 있지 못한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친 후 공장장이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공부하다가 졸지 않도록 책상에 엄지손가락을 올려놓은 뒤 중·고등학교를 동등하게 합격해 졸업했다. 

이재명 는 1982년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금으로 서울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몰린 그는 입학식에서 어머니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크게 만들겠다. 

그래야 엄마가 잘살게 할 수 있다”고 책 ‘이재명, 그 남자’에 썼다.

그러나 로스쿨에 입학한 뒤 5·18 광주항쟁의 진상을 규명하고 진로를 바꿨다. 

학살당한 사람들과 사건의 진실을 공유한 친구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는 저서 ‘이재명의 굽은 팔’에서 “광주는 나의 구원이자 스승이자 사회 의식의 뿌리였다”고 말했다.

사회운동가 변호사부터 정치인까지1986년 이 전 시장은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생으로 한국노동법학회를 만들고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학원에서 미래의 대통령 노무현,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에 의해 강의에 참석한 이후, 이 대통령은 변호사 같은 권리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성남에 있는 자신의 법률사무소에서 이 대통령은 ‘민생을 지켜라’는 모토를 벽에 걸고 있었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민변-변호사모임을 결성하고 노동과 인권옹호에 앞장섰다. 

1995년에는 성남시민회 헌장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시민 이슈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성남 분당구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분당 파크뷰아파트 특혜분양 의혹을 폭로했다.

시내 2개 종합병원의 동시 휴업 이후 의료 서비스 공백이 우려되자 이 시장은 성남에 시립병원을 설립하는 사회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2004년 당시 보수 한나라당이 장악한 성남시의회는 47초 만에 발의안을 부결시켰다. 

이 결정은 사회 운동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도록 설득했다.

2006년 5월 31일 지방선거에서는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성남시장에 출마했고,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지금은 없어진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분당 A 지역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그는 두 종족 모두 졌다. 2010년 민선 5기 성남시장에 당선돼 2014년 연임했다. 

종합뉴스

시장 시절 청년기본배당, 무료 산후조리원, 무상교복 등 복지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도 그의 빈곤 경험 때문이다.